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팀 내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면서도 전술 역량 부족에 대해선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5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2024 제1차 전력강화위원회’를 진행한 후 브리핑을 통해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을 경질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이날 전력강화위원회에는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정재권 위원, 박태하 위원, 곽효범 위원, 김현태 위원, 김영근 위원, 송주의 위원, 조성환 위원, 최윤겸 위원이 자리했으며, 미국으로 떠난 클린스만 감독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당초 오후 2시 브리핑 예정이었으나 회의가 길어지면서 오후 3시 30분으로 한 차례 미뤄졌고, 한 번 더 연기되면서 오후 4시에 시작했다.
회의가 완전히 종료된 후 취재진 앞에서 브리핑을 진행한 황보관 본부장은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예선을 앞두고 더 이상 대표팀 감독으로 리더십을 계속 발휘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있었다”라며 “(감독) 교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전반적으로 모아졌다”라고 경질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 탈락 후 경질로 여론이 모아졌던 상황에서 더욱 기름을 부었던 건 대표팀 내분설이었다.
지난 14일 영국 더선은 “손흥민이 아시안컵에서 탈락하기 하루 전 팀 동료와 다퉜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손가락이 탈구됐다. 어린 선수들 중 일부는 탁구를 즐기기 위해 밥을 빨리 먹었고, 식사 자리가 팀 결속 기회라고 생각한 주장 손흥민은 이에 불만이 있었다”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요르단전을 하루 앞둔 5일 저녁 식사 시간 이강인, 설영우(울산),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 어린 선수들이 따로, 일찍 식사를 마쳤다. 다른 선수들이 조금 늦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고, 시끌벅적하게 탁구를 치는 소리가 들려 후배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손흥민은 이를 제지하려 했다.
이강인은 이에 반발해 맞대응 했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구됐다. 이후 고참급 선수들이 클린스만 감독을 찾아가 요르단전 명단에 이강인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토너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원 팀’ 정신을 해쳤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강인을 명단에서 제외하지 않았고, 요르단전에 선발 출전시켰다.
보도 직후 논란이 커지자 이강인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장문을 냈다.
“지난 아시안컵 4강전을 앞두고 손흥민 형과 언쟁을 벌였다는 기사가 보도됐습니다. 언제나 저히 대표팀을 응원해주시는 축구팬들께 큰 실망을 끼쳐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제가 앞장서서 형들의 말을 잘 따랐어야 했는데, 축구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저에게 실망하셨을 많은 분들께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히면서 대표팀 내 불화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선수단 내 불화는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 분쟁이 발생한 다음날, 대표팀은 요르단을 상대로 유효슈팅 0개라는 최악의 졸전을 펼친 끝에 0-2로 무너졌다.
다만 선수단 불화와는 별개로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 경기이기도 했다. 이미 조별리그 2차전에서 한 번 맞붙은 경험이 있던 요르단을 상대로 똑같은 전술에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대 압박에 고전했던 박용우를 일찌감치 교체하지 않고 후반전에 임했던 것도 첫 번째 실점 원인이 됐다. 용병술에서도 낙제점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날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한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회의 내내 선수단 불화가 있었던 것, 그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전술이 부족했다는 점에 있어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보 본부장은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이야기했다. 선수단에 불화가 있었고, 그게 경기력에 영향을 줬다고 이야기 했다”라며 “선수단 핑계를 댔다기 보다는 그것 때문에 경기력이 안 좋았다고 이야기 했다. 전력강화위원들은 그 부분(전술 역량 부족)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했으나 감독은 인정하지 않았다”라고 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선수단 탓이 아니라고 포장하고 있으나 결국 팀 내 불화가 경기력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건 선수 탓을 한 것과 다름 없다. 반면, 자신의 전술 역량 부족에 대해서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요르단전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 내내 전술적 역량이 부족했음을 여실히 드러낸 클린스만 감독이다.
앞서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 후 귀국 인터뷰에서도 선수단을 탓했다. “이번 대회를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4강에 진출했다는 부분에 있어서는 상당히 긍정적이다”라면서도 “요르단전에서 우리가 기회를 전혀 만들지 못했다. 이런 밀집 수비를 상대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상당히 실망스럽다. 경기 후에도 화가 나고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경질로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남은 건 최종 결정권자인 정몽규 회장의 선택 뿐이다. 다만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클린스만 감독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최악의 형태로 한국 축구와 작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